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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고회사 AE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4) - 광고회사 AE의 한계
    기술 2018. 2. 19. 09:35



    대리를 달았다. 연봉도 꽤 많이 올랐다. 그러나, 일은 재미가 없어졌다. 더는 도전적이지 않았다. 안정된 실무 능력에 기초하여, 내 수준 안에서 잘 할 수 있는 업무의 반복이었다. 근데 그때는 그냥 만족했다. 편안~~~했다.


    남는 시간엔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책들이 나를 안락함에서 깨워줬다. 책은 나에게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했다. 앞으로 기술이 세상을 뒤흔들 것이며, 기존의 인문 베이스의 직업역량은 가치를 잃을 것이라고 했다. 광고회사 AE라는 직업은 언제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고심하게 됐다. 마침 통신사의 AI 스피커를 광고하는 일을 담당했다. AI스피커이므로,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디지털 매체를 주로 사용하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대행 수수료를 많이 챙길 수 있는 TV 광고 집행을 원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매체안으로 설득하려니 당연 힘들었다. 레거시 미디어의 광고 대행사 AE는 그만큼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TV광고.... 요즘 누가 보는가. 40대조차도 이제는 잘 보지 않음이, 코바코의 데이터에 따르면 검증이 됐다. 50대 이상의 전유물인 셈. 그러나, 전통의 광고대행사는 대행 수수료 때문에 전통 미디어를 포기할 수가 없다. 거기에 속는 기성 광고주들도 바보다. 광고의 트렌드 역시 바뀌고 있다. 3년전부터, 깐느에서 상을 타는 광고들은 크리에이티브가 뛰어난 광고라기 보다는, 고객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사용한 디지털 엑설런스가 있는 작품들이다. 즉, 인문 베이스의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테크 베이스의 데이터사이언스가 광고의 메인 스트림을 뒤흔들고 있다.


    박웅현 아저씨가 인문을 잘하면, 책을 많이 읽으면, 그게 밥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앞으로 얼마나 더 유효한 명제가 될 지, 잘 모르겠다. 물론 책 읽는 것, 인문학 하는 것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기술과 데이터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구글을 하다보면, 그 사실을 더욱 더 잘 알 수 있다. 광고에는 전통적으로 '세그멘테이션'이라는 개념이 강조돼왔다. 성별, 나이, TPO(Time, Place, Occasion)에 따라 고객 집단을 분류하는 시장 분석 기술이다. 그런데, 요즘엔 그 개념도 무용지물이다. 애드 테크의 발전에 따라, 집단별 타겟팅이 아닌, 개인별 타겟팅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섭다. 내가 잠깐 여자친구 속옷 선물을 위해 쇼핑몰을 방문했을때, 내 유튜브 광고에는 해당 쇼핑몰에 대한 구좌로 가득 찼던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만큼 데이터에 의한 타겟팅은 세분화됐고, 이걸 무시하는 마케터는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크리에이티브도 마찬가지다. 나는 광고인이지만, 지난 3년을 돌아봤을 때, 시장을 크게 뒤흔든 광고는 배달의민족 런칭 광고와 SSG 광고밖에 없다. 그것도 예전 광고들... 그러니까 '진심이 짓는다' '사람이 향합니다' 만큼의 파장은 없다. 크리에이티브가 구려진 건 아닐거다. 광고의 임팩트를 뛰어넘는 UGC와 기존 콘텐츠가 많아진 것. 미디어 선택에 따라 광고의 파워가 현격하게 떨어진 것이 이유일 거다. 일단, 콘텐츠의 양이, 10년전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다. 유튜브에서 한달에 올라오는 영상의 수가 3천만개라고 하니, 할말 다 했다.


    즉 광고회사 AE로는 데이터로도, 크리에이티브로도 비빌수 없다는 한계가 갈수록 명확히 느껴졌다. 광고 현장의 멋짐과 재미는 있겠지만, 이 직업이 10년 이상 유지 될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계산이었다. 그러던 중, 모 포털에 다니는 친구가 연락이 왔다. '인공지능'같은 기술을 마케팅 해줄 수 있는 PM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기술을 마케팅 해본적 있지만 잘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IT회사 PM이라니, 너무도 생소하고 낯선 영역이었다. 못하면 뭐 어때, 면접이나 한 번 봐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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