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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 AE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3) - 광고회사 일상다반사

쉬운 남자 2018. 2. 13. 08:56

3년 반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딱 하나의 클라이언트를 담당했다. 대기업 소속의 인하우스 에이전시였는데, 외부 클라이언트 중 가장 큰 매체 물량을 가지고 있었다. 통신사다. 광고회사를 다니면서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가지를 풀어볼까 한다.


1. 폐급 신입 사원

이것저것 일벌리기 좋아해서, 대학 생활 때는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늘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며,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회사에 가면 일 잘하는 A급 신입사원으로 포지셔닝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보니 아니더라. 아무리 대학교때 좋은 평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들어가서의 평판은 '사수'가 결정한다.


내 사수는 나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성적이지만 꼼꼼하고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을 레버리지하여, 자신의 평판을 드높일줄 알았다. 까놓고 말하면, 윗사람한테 엄청 잘 보이고, 아랫사람을 왜 자기처럼 못하냐며 깎아내리는 사람이었다. 사수는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이었다. 선배들에게만. 후배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었고, 내가 그의 세번째 사수였다. 굉장히 성격이 섬세해서, 나의 직선적인 성격과 잦은 트러블이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그냥 엄청 위중한 상황이 아니면 거짓말 잘 안하고, 돌려 말하지 않는다. 선배의 아이디어가 구리면, '지금 상황에서 맞지 않는 아이디어'라고 하며, 선배가 센스있게 식사 예약도 하고, 숟가락도 미리 놔 둬야지...하면, '죄송합니다' 하기 보다는, 업무가 우선순위에 있다보니, 그런 생활적인 배려는 미치지 못한것 같습니다. 라고 얘기했다. 하긴, 나도 불편한 후배였을 거다. 절대 대놓고 날 까지 않았다.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암튼,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사수는, 여기저기 내 흉을 보고 다녔다. 애가 눈치가 없다느니, 일머리가 없다느니, 센스가 없다느니... 조직의 대다수가 나에 대해 안좋은 인식을 갖게 되더라. 억울한 마음도 있고해서, 한번은 술자리에서 선배가 '솔직히 불편한거 있냐'고 말하라기에, '나 없는 데서 흉좀 보지 말라'라고 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선배에게 솔직하게 얘기한 걸' 전했더니, 넌 정말 눈치가 없다며 핀잔을 받았더랬다. 결국, 이 관계는 반전됐다. 선배는 나 말고 다른 사람과도 이런 이상한 관계를 쌓아나갔고, 그 관계에서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급작스레 평판이 안좋아졌다. 이직해버렸다. 경쟁사로.


여전히 나는 폐급 신입 사원이었고, 팀장은 내가 이야기하면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내 아이디어는 평가절하당했다. 1년차. 회사생활은 지옥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더 영리할 수 있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수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같이 부족한 풋내기였을거다. 자기는 매사에 조심스러운데, 후배는 아는 것도 없는 놈이 매사에 직선적으로 얘기하니 얼마나 신경쓰였을까. 그 사람이 진짜 고수였다면, 흉은 보지 않았을텐데. 이런 마음에서, 풋내기에 잘못 대응한 내 잘못이 크긴 크다. 사회생활하면서 마음 속에 담아야할 중요한 명제가 있다. '상대는 날 위해서 바뀌지 않는다.' 내가 바꿔야 한다. 내가 팔릴만한 포지셔닝을 해야한다.이다. 지금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찌됐든 그사람 기호를 맞췄을꺼다. 인정받을 때까지. 기회를 잡을 때까지.


암튼 그랬다. 나는 최악의 스타트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2. 귀인을 만나다

회사를 떠난 첫 사수에 이어, 회사의 실력자라는 고연차의 사수를 만났다. 처음부터 대놓고 날 싫어했다. 너는 버르장머리 없는 XX라며, 실력이 없으면 인성이라도 좋아야지...쯔쯔하며. 날 초면부터 면박주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 사람이 나의 귀인인지 몰랐다.


진짜 엄청 굴렀다. 중요한 일은 절대 안주고, 궃은 일만 했다. 몇푼 정산하는 일, 업체 네고 하는 일, 컨택리포트(회의록)의 초안 만들기, 혹은 문서 다듬기, 기초 리서치 등. '기획서' '팩트 체크' '제안서' 등 AE스러운 멋진일은 하나도 주지 않았다. 진짜 '짜친 일'만 했다. 근데, 그것도 잘 못했다. 나는. 어어어엄청 혼났다. 그런데 이전 사수와 다른 점은, '감정으로' 혼나지 않았다. 화를 내지 않았다. 그냥, 팩트로 묵직하게 맞았다. 이 정산은 이래서 틀렸다. 네고할 때 그런식으로 감정을 담으면 안된다. 자료조사할 때는 출처를 명확히 파악해라 등. 내 결과물의 부족한점을 족족 짚어내며, 나를 발전 시켰다.


어느날 사수는 장기 출장을 가게됐고, 어쩔 수 없이 사수가 하고 있던 중요한 일들을 내가 가져가게되었다. 그동안 쌓은 기본기 때문이었는지, 크게 빵꾸는 안나게 일을 처리했고, 그 때부터 일이 산더미처럼 들어왔다. 전과는 말도 안되게 중요한 일들을. 16년 초였나, 2개월 사이에 광고를 6편 찍은 적이 있다. AE사이드에는 나 혼자였다. 신출내기 사원이 CD, 미디어 팀장님들과 독대하게 되었다. 신기했다. 기하급수적으로 일이 늘었다.


자연스레, 평판은 좋아졌다. 내가 잘해서? 글쎄... 알고보니, 귀인은 나한테는 혹독하게 대하면서, 나를 트레이닝 시킨 이야기를 엄청나게 하고 다녔더라. 잘 버티니 대견하다며, 나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거라며. 그 사수가 나중에 나한테 얘기하더라. '처음에는 소문만 듣고 진짜 쓰레긴줄 알았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해보니 그냥 눈치가 없지만 욕심이 많은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큰 사고 안나는 범위내에서 극한으로 일을 줬고, 그걸 처리하면서 느는걸 보면서, 부사수키우는 맛이 있었다고...